미국생활

뉴헤이번과 플리머스

지수연수 2011. 4. 29. 03:50

동부여행 사흘째(2011.4.18.월요일)

 

아침일찍 뉴욕을 떠나 뉴헤이번으로 왔습니다.

아침식사를 예일대 근처에서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왔는데 식당 찾기가 쉽지 않아서

일단 예일대 구경을 잠시하고...

 

 

 

잔디밭은 일단 뛰어주셔야 하는 두 자매

청솔모가 있어서 청솔모와 술래잡기 하고 있는 지수

 

아직 대학에 크게 관심이 있을 나이는 아닌지라

예일대가 오래되고 좋은 대학이라는데 의의를 두고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한장 찍고 아침밥 먹으로 고고씽 

 

예일대의 조그만 비지터 센터에서 알려준대로 식당을 찾아서

au bon pain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예일대 주변을 걷는 두 걸스

 

 

아이들 뒤에 보이는 건물이 예일대 도서관으로 생각됩니다...

 

 

뉴해이번은 아침 때문에 잠깐 들렀었고

관광의 다음 목적지인 플리머스로 가다가

뉴런던이라는 도시에서 우연히 잠수함을 발견해서 인증샷 날려줍니다.

 

 

크기로 봐서는 디젤잠수함은 아닌것 같고 핵잠수함인 것 같네요.

알고 보니 뉴런던 부근에 잠수함 기지가 있다고 합니다.

 

 

중간중간에 경치를 보도록 되어 있는 길가장자리 공간이 있어서 잠시 들리곤 했습니다.

미스틱항구라고 되어 있어서 이름이 낮익다 싶었는데

미스틱리버라는 영화가 있었던것 같습니다. 미스틱리버는 보스톤 쪽에 있다고 하더군요.

 

플리머스에 도착했습니다.

플리머스에서 처음 본것은 NOAA의 해양보호구역 관리선박...

플리머스 맞은편의 케이프코드 앞쪽에 Stellwagen이라는 해양보호구역이 있는데 이곳을 관리하는 선박이 있더군요.

 

 

주차장 쪽에서 본 메이플라워호와 플리머스 전경

 

 

플리머스 앞 쪽 바다...멀리 보이는 모래 둑같은 것이 케이프코드라는 곳 입니다.

 

 

플리머스는 1620년 101여명의 영국 청교도들이 도착하여 정착한 곳입니다.

얼마전까지는 최초의 정착지로 잘못 알려져 있어 최초의 정착지인 제임스타운보다 더 유명한 곳이 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이 타고 왔다는 메이플라워호를 복원한 모습입니다.

 

 

플리머스 락을 찍은 모습입니다.

청교도들이 처음 발을 딛은 돌이라고 해서 그들이 온 1620년을 새겨 놓았습니다.

나중에 이곳을 개발할 때 한 노인이 이 돌이 청교도들이 처음 밟은 돌이라고 주장을 해서

이렇게 새겨 놓았다고 하니 신빙성은 약간 떨어지는 듯 합니다.

 

 

 

플리머스에 간 이날 날씨가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하트놀이 중인 두 어린이

 

 

 

 

토끼놀이 중인 두 어린이

 

 

플리머스는 한적한 시골동네여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남의 콘도 앞에서 떡하고 포즈를 잡는 연수어린이

 

 

점심은 여기에서 산 핫도그로 때웠습니다.

 

 

제임스타운에는 포카혼타스가 영국인들의 정착을 도왔다면

플리머스에서는 인디언 추장 마사소이트(Massasoit)가 영국인들의 정착을 도왔다고 합니다.

사실 인디언들의 도움없이 춥고 배고픈 계절을 견디어내기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 역시 플리머스에서 시작되는데

이곳에 정착한 이듬해에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게 되자

청교도 지도자 브래드포드가 인디언 추장 마사소이트를 초청하고

인디언들은 칠면조를 잡아 조촐한 축제를 열었던 것이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소박하고 화목했던 역사가 변질되어

정복과 인디언 살육으로 이어지는 잔인한 역사로 바뀌었으니

인디언들의 입장에서는 추수감사절이 감사할 날이 아니라 통곡할 만한 날이

되었다는 뜻에서 이를 의미하는 비가 조그만하게 플리머스 언덕에 서 있었습다.

 

 

제임스타운에는 존 스미스선장이 있듯이 플리머스에는 브래드포드가 있었다.

 

 

제임스타운과 플리머스를 둘러보았으니 미국의 초기 역사에 대해서는 현장답사를 잘 한셈이 되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친절한 인디언씨와 배신자 백인들...